대중의 선택을 받는 완전한 창작물은 존재하는가?
브레이브 걸스가 '롤린'으로 역주행 신화를 쓰고 뒤이어 들고 나온 곡은 '운전만해'라는 씨티팝 장르의 음악이었다. 당시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듣고 '어? 이래도 되나??'라는 감정을 느꼈다. 왜냐하면 일본 시티팝 최고의 명곡이라 불리는 '플라스틱 러브'와 도입부는 물론 전반적인 멜로디도 거의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해당 곡을 작곡한 용감한 형제가 과거 방송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학창시절 형이 집에 엄청나게 많은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앨범을 쟁여놓고 있었다. 그때 소장하고 있던 여러 음악들을 듣고 베끼면서 곡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운전만해'라는 곡이 흔히 말하는 샘플링인지, 아니면 표절인지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른다. 하지만 용감한 형제가 보여준 것처럼 이미 검증받은 멜로디나 리듬을 잘만 활용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높은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흥행에 대한 비밀을 연구한 데릭 톰스의 책 <히트 메이커스>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저자는 19세기 브람스의 <자장가>가 어떻게 당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브람스가 19세기 최고의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 브람스는 각 지역의 민요에 심취했고 기억하기 쉬운 혹은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으면 따놓았다가 작곡할 대 적절히 활용했다. 유럽 각지를 여행할 때면 도서관에 들러 해당 지역의 민요집을 찾아 악보를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곡조가 있으면 기록해두곤 했다."
책에 따르면 브람스가 아름다운 노래를 쉼 없이 만들어낼 수 있던 비결은 장르를 적절히 조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능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브람스는 작곡을 할 때 주로 '샘플링 기법'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과거 다른 감독의 작품의 장면을 차용하면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존경의 뜻을 담는다. 하지만 음악계에서는 다르다. 이미 존재하는 곡의 코드나 음을 가져다 쓰면 표절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얼마전 표절로 논란이 있었던 유희열 사태의 원곡자 사카모토 류이치는 해당 논란을 일종의 '오마주'로 눈감아주려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팬들의 시선은 여전히 냉랭해 보인다.
최근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가수이자 작곡가인 김태원 또한 "(작곡가가)어떤 음악의 멜로디에 영감을 받을 수 있으나 유희열씨의 곡은 아예 전체를 가져다 쓴 수준이다. 이게 아이러니다."라며 사실상 표절임을 못 박았다.
사실 최근에 이슈가 된 유희열 표절 논란 전에도 한국 가요계는 샘플링과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어왔다. 가장 대표적으로 과거 문화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렸던 서태지다.
서태지는 Rock을 기반으로 댄스나 힙합 등 여러 장르를 조합해 대한민국 가요계에 신드롬을 불러왔지만 여러 히트곡들이 코드 진행이나 기타 솔로 부분 등 외국의 다른 곡들과 너무 유사해 지금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중이다.
실제로 서태지의 표절 의혹이 계속되자 서태지의 지인으로 알려진 가수 김종서가 방송에 나와 표절 논란에 대해 대리해명(?)을 한적도 있지만, 시나위의 전 기타리스트 신대철을 포함한 여러 뮤지션들이 표절이라고 주장을 하는 등 논란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상태다. (아마도 한국 가요계에 너무나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라 그간 이 문제를 쉬쉬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서태지는 여러 곡과 장르를 배합해서 적어도 대중적으로는 완벽한 성공을 이루었다는데서 데릭 톰슨이 <히트 메이커스>에서 말한 흥행 공식을 일정부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유희열 사태를 통해 나오고 있는 여러 자성의 목소리는 '상업성을 기반한 예술작품에 우리는 어디까지 모방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게 만들고 있다.
※ 본문에 언급한 김태원은 과거 한 방송에서 표절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음악을 아예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곡가로써 김태원에게 가장 많이 따라오는 대중의 평가는 '자가복제'다.
'경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조직 내에 숨겨진 병리현상 11가지 (0) | 2023.12.25 |
---|---|
협상의 기본 배트나(BATNA)는 무엇일까? (0) | 2023.12.23 |
색온도로 보는 식당 조명의 비밀(다음중 소개팅 장소로 유리한 곳은?) (2) | 2023.12.03 |
술 빚기와 빵 만들기, 그리고 경영 (1) | 2023.11.27 |
사마의와 이순신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용기의 리더십 (2) | 202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