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underdog)'야 말로 난세를 즐겨야 한다
유튜브에 '개그계의 마블 시네마틱' 이라 불리는 채널이 있다. 바로 '피식대학'이다. 피식대학의 맴버들은 본래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TV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되자 유튜브로 넘어와서 채널을 개설했다.
피식대학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구독자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의 영상에선 기존 공중파 채널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는 것이다. 나 또한 피식대학을 보다보면 재미는 물론이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획력이나 연기력에 늘 감탄을 하게 된다.
피식대학은 어떻게 매번 이런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까. 피식대학은 기업으로 치면 스타트업과 같다.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 과거의 콘텐츠들을 보면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으로 유명한 크리스 텐슨 교수는 기존 산업에 종속된 기업(특히 거대 기업)이 혁신을 만들고 시장을 재편성 했던 사례는 역사에 꼽을 정도로 힘든 일이라 말한다. 이말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피식대학을 만든 개그맨들은 기존의 지배적 산업 구조에서 튕겨져 나왔기 때문에 혁신을 만들고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일전에 피식대학의 주축 맴버인 김민수와 김해준 개그맨이 유재석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2017년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늘 (웃찾사)폐지설이 돌았어요. 막상 폐지됐을 때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죠."(...)
"공개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이제 생계를 어쩌지? 하는 생각이들면서 계속 개그맨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어요. 이제 제 동기들은 다 유튜브를 해요"
피식대학의 개그맨들은 전통적인 미디어 산업의 붕괴와 개그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맴버들의 멀티 채널을 비롯한 과거 유튜브 영상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컨셉들은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나는 개그계의 대부인 임하룡씨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을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하룡은 공중파에서 공채가 사라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후배 개그맨들이 현실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럴 때야 말로 개그맨들이 희극인의 본질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을 잊지 말라고 조언한다.
"희극인들이 서야 할 자리가 꼭 공개 코미디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연기든 뭐든 간에 어느 곳에서든 열심히 본질에 충실하면 어느순간 기회가 올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임하룡의 인터뷰처럼 전통적인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는 걸 기존의 지배구조에 위치한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박명수는 자신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피식대학의 김민수가 자신을 개그계 후배라고 소개하자 "이제 공채 개그 프로그램도 없는데 선후배 그런게 어딨냐. 그냥 인기 유튜버다. 그냥(부담갖지 말고) 날 웃겨줘라" 와 같은 약간은 자조 섞인 농담을 한적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변화에 다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주변을 둘러보면 시대의 변화를 눈 앞에 목도하면서도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세상은 이처럼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을 꼰대나 혹은 기득권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용어중에 '다크호스'라는 말이 있다. 다크호스는 본래 경마 용어로 언더독이 예상치 못한 우승을 하거나 높은 성적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 경마에서 다크호스는 언제 자주 나타날까? 바로 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셀 때다. 맑은 날에는 반전이 나오지 않는다. 판이 변할 때야 말로 약자(Underdog)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씩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는 안전지대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만약 내가 지금의 안전한 상황에만 안주하고 있다면? 내 가능성을 스스로 좀먹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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