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무실 근처에서 볼일이 있다며 방문한 친구를 만났다. 다 큰 아저씨 둘이서 저녁을 먹으며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시다 보니 역시 회사 이야기가 빠지질 않았다. 나는 최근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친구에게 "새 회사는 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아, 조금 지나면 새 일자리 알아볼 거야"라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어? 너 이직한지 얼마 돼지도 않았잖아. 그리고 조건도 나름 만족해했었고…" 라며 묻는 내게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직급이 팀장이면 뭘 하냐. 기획자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말을 마치고 맥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친구는 이내 말을 이었다. "지난주에는 새로 들어온 팀원에게 일을 가르쳐 주는데 왜 이렇게 애를 들들 볶냐고 한소리 하더라. 나는 내 팀원에게 일을 깔끔하게 진행하기 위해 충분히 부족한 부분을 일깨워주었을 뿐이야… 그 녀석도(팀원) 나의 이런 방식이 본인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했다고! 이럴 거면 팀장이라는 직급이 뭐 하러 있나 싶다. 결국 대표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내 권한은 하나도 없잖아."
그 외에도 친구는 몇 가지 불만을 더 이야기했는데,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첫째, 대표가 팀장들을 믿지 못한다. 둘째, 그 때문인지 팀장의 자율권이 침해받아 주도적으로 일을 하기 힘들다. 관리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한비자>는 이같은 조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닭에게 새벽시간을 알리게 하고 고양이에게 쥐를 잡게 하듯이 각자의 능력을 활용하면 위에 있는 자가 따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위에 있는 자가 장기를 앞세우면 모든 일에 균형을 잃는다. 자기 자랑이 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면 아랫사람에게 속임 당하기 쉽다. 구변 좋고 영리하다고 지나치게 자부하면 아랫사람이 빌붙어 일을 꾸민다. 위아래가 할 일을 바꾸면 나라는 그 때문에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使雞司夜, 令狸執鼠, 皆用其能, 上乃無事. 上有所長, 事乃不方. 矜而好能, 下之所欺: 辯惠好生, 下因其材. 上下易用, 國故不治"
- <韓非子>, 揚權
<한비자>는 조직에는 각 직위별로 할 일들이 구분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리더가 지나치게 유능함을 보이고 모든 일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일의 성공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듯 조직원들의 힘을 사용할 줄 모르는 리더를 <한비자>는 세 단계(상급, 중급, 하급)의 리더 중에서도 가장 아래인 하급의 리더로 보았다.
"하급의 군주는 자기의 능력을 다하고, 중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힘을 다하게 하고, 상급의 군주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다하게 한다."
"下君盡己之能, 中君盡人之力, 上君盡人之智"
- <韓非子>, 八經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만한 일화가 있다. 중국 진나라 말기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당시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 불리며 불패의 장군으로 군림하고 있었고 유방은 이러한 항우에게 늘 패해 도망 다니기만 했다. 그러나 결국 최후의 승리는 유방이 차지했다.
천하를 통일한 직후 연회장에서 유방은 공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제후들과 장령들은 나를 의식하지 말고 모두 자기의 진실한 견해를 말해보라.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항우가 천하를 잃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유방의 질문에 신하 중 한 명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폐하는 성격이 데면데면하고 또 사람들에게 치욕을 주기를 좋아하지요. 항우는 마음이 착하고 사람을 잘 보살펴줍니다. 그러나 폐하는 점령한 성지와 빼앗은 땅을 언제나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천하 사람들과 향락을 같이 누렸습니다. 하지만 항우는 재능 있는 사람을 질투하고, 공이 세운 사람을 살해하고, 재간 있는 사람을 의심하고, 승전을 하여도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땅을 빼앗고도 부하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천하를 잃은 이유입니다."
그러자 유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사람은 그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계책을 짜고 책략을 꾸미고 전쟁의 승리를 결정하는 면에서 말하면 나는 장량보다 못하다. 강산을 지켜내고 백성을 안무하고 양초와 군사 보급품을 보장하는 면에서는 나는 소하보다 못하다. 백만 대군을 조직하고 지휘하여 백전백승 천하무적으로 싸우는 면에서는 나는 한신보다 못하다. 이들은 남다른 호걸들이다. 내가 재능은 없지만 이들을 잘 쓸 줄 알며 뿐만 아니라 난 일단 쓰면 의심을 하지 않는데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항우에게는 범증이라는 모사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신임과 중용을 받지 못했으니 이것이 바로 항우가 실패한 원인이다."
이 일화는 리더로써 유방과 항우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실리콘 밸리의 리더십 관련 전문가인 리즈 와이즈먼은 저서인 <멀티플라이어>에서 리더십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그는 항우처럼 자신의 능력을 믿고 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리더십을 '디미니셔(Diminisher)', 유방처럼 조직원을 끝까지 믿고 함께 성장하려는 리더십을 '멀티플라이어(Multiplier)'라고 이름 붙였다.
아래 이미지는 리즈 와이즈먼이 말한 디미니셔와 멀티플라이어가 속한 조직의 인재가 순환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와이즈먼에 따르면 디미니셔가 리더인 조직은 <그림1>처럼 좋은 인재가 계속해서 빠져나간다.
반면, 멀티플라이어가 리더인 조직은 <그림2>처럼 좋은 인재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 앞서 일화로 들었던 유방의 대담에서 유방이 언급한 한신도 본래 항우 소속이었던 장수였으나, 디미니셔였던 항우 진영을 빠져나가 유방에게 귀순한다. 이는 후에 항우와 유방이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순간 승리의 추가 유방 쪽으로 기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와이즈먼은 실리콘밸리에서 크게 성공했던 조직의 리더를 조사했더니 대체로 유방과 같은 '멀티플라이어'의 특징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디미니셔는 초기에는 좋은 성과를 보일지 몰라도 결국 자신과 조직 모두를 망가뜨렸다. 그는 이들(디미니셔)이 마치 역사에서 사라진 제국의 리더들과 같았다고 표현한다.
리더가 조직의 자율권을 간섭하고 모든 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조직원들은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런 조직에는 유능한 인재들은 회사를 떠나가고 결국 수동적인 인재들만 남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스스로 '뛰어난 리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하버드 경영대 리더십 전략으로 유명한 린다 A. 힐은 승리하는 조직의 리더는 위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서인 <보스의 탄생>에서 리더의 위임의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권한위임은 직원들 개개인과 함께 일하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독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관리자로서 직원들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 또한 발휘하지 못한다. (...)권한위임에는 위험이 따르기도 하지만,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는 조직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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