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제가 발전하는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1. 우선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이윤이 창출되면, 소득이 높아지고 자본이 축적된다.
2. 높아진 소득은 구매력을 자극해 상품의 수요를 증가시킨다. 축적된 자본은 기술혁신에 투입되어 신제품 개발을 촉진한다.
3. 이때 통상 고가의 제품이나 사치품의 형태로 신제품이 출하되고 새로운 소비 시장이 창출된다.
4. 한편 기술의 혁신은 대량생산과 제품 공급을 확대해 다시 고용과 소비를 늘리게 된다.
이처럼 산업사회는 우리 몸속의 피가 순환하듯 내부의 경제 혈관을 통해 순환과 발전을 반복한다. 이러한 경제 성장과정은 '확대재생산' 또는 '확대재생산체제'로 부르며, 1980년대 이르러 경제학자 폴 로머에 의해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모든 국가는 동일한 속도로 발전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농업이나 어업이 위주인 국가와 제조업과 하이테크 분야가 발달한 국가의 기술, 혁신 수준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러한 경제발전 속도의 차이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은 당시까지도 농업국가를 벗어나지 못했던 청과 러시아를 차례로 굴복시키며 조선과 만주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서양의 후발국가들은 자생적인 기술혁신, 즉 내생적 요소만으로 이미 산업화된 국가들과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외생적 성장을 통한 경기 성장을 꾀하게 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와 독일이다.
외생적 성장은 민간 주도의 경제 시스템과 다르게 정부 주도하에 철저한 계획경제를 우선으로 한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미 앞선 기술을 갖춘 선진국들과의 경쟁을 피하고, 자국 산업이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당시 독일의 벤츠, 폭스바겐 등은 이렇게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실제로 소련과 독일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산업 정책에 개입하면서 빠른 속도로 선두국가와의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루스벨트와 히틀러의 초기 정책이 놀랍도록 닮은 것은 대공황 이후 미국 또한 외생적 성장 이론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부작용도 존재했다. 국가 주도하에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은 경기 불황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불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으려면 기술 혁신을 통한 산업의 재편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필요한데, 이건 전형적으로 내생적 성장을 통해 발현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 이를 경제학에서는 '신성장 이론'으로 부른다. 신성장 이론에 따르면 과거 동독이나 북한같이 자유시장 원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공산국가들이 어째서 산업적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운지 설명해 준다.
또한 정부의 역할에만 의지한 국가들은 대체로 전체주의나 독재국가로 전락했다. 이건 '성장'과 '번영'이라는 대승적 목표 아래 자유를 포기하고 획일화된 경제제도를 선택한 결과다. 따라서 이런 국가들은 성장이 멈추면 자연히 정권의 정당성(=명분)도 잃어버렸다.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외생적 성장이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응용한 나라는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개발 5개년'이라는 국가주도 산업정책을 실행한다. 자유시장주의라는 토대 위에 외생적 요소를 결합한 박정희 정부는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한국도 독재를 벗어나진 못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박정희 정부는 외생적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다. 오일쇼크로 시작된 경기침체는 정권의 정당성에 흠집을 냈다. 한국은 1973년 14.8%라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1974년에는 9.8%, 1975년에는 7%대까지 떨어졌다. (한국이 97년 외환위기 당시 낙폭률이 10%였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폭락이다.)
1979년 박정희 암살 사건은 이 같은 정세적 혼란 속에서 벌어진 정치적 참극이었다. 이후 1979년 8% 중반이었던 경제성장률이 1980년대 -1.4%를 기록하게 되고, 이 때 한국에 대규모 시위(5.18)가 발생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동구권의 몰락 또한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침체가 원인이었다.)
※ 이 같은 관점으로 보면 박정희가 한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독특하다. 박정희는 우익 진영의 태두로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그는 큰정부주의자, 다시 말해 진보성향 정치인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건 나치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결국 지속적으로 기업을 국유화했던 정책과 같다. 사실 지금도 그를 극단적으로 추앙하고 있는 집단의 모습은 네오 나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영웅화, 신격화는 파시즘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1980년대는 중국에도 큰 변화의 물결이 들이 닥친 시기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집권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한국처럼 내생적 성장 위에 외생적 성장을 접목시킨 중국은 1990년대 이후부터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중국이 20세기 선두 국가와의 산업 격차를 줄인 방법은 한국의 성장 과정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하지만 한국이 오일쇼크 이후 점차 내생적 성장을 통한 확대재생산 비율을 높여 나간 반면, 현재 중국이 불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정부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 (농민의 사회적 지위 격상, 민간 기업의 국영화, 지도층 영웅화, 올림픽 개최, 전시체제 돌입 등)은 역사적으로 성장동력을 상실한 정권이 내부적 결속을 위해 벌였던 과정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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