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논란으로 보는 혁신기업
꽤 많은 사람들이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혁신과는 거리가 먼 기업이라고 말한다. 배민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배민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 배민은 새로운 기술이 없다. 그저 전단지를 모바일에 옮겨놨을 뿐이다.
- 따라서 배민이 제공하는 가치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 오히려 배민 때문에 멀쩡하던 시장이 교란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배민은 새로운 기술이 아닌, 요행으로 시장을 교란 시키고 있는 악덕 기업이다. 그럼 궁금해진다. 진정한 혁신 기업이란 무엇일까? 배민은 정말로 혁신을 만들지 못했을까?
1. 혁신은 무엇인가
혁신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혁신'(革新, Innovation) -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혁신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재창조'를 말한다. 혁신을 경영 이론으로 전 세계에 퍼뜨린 피터 드러커는 혁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객 창조 전략은 그 자체가 혁신이다. (...) 고객 창조야말로 사업의 목표이자, 경제 활동의 궁극적 목표이다."
- 피터 드러커, <위대한 혁신>
그리고 그는 고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객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기업이 무엇인지, 기업이 무엇을 생산하는지, 기업이 앞으로 번창할지를 결정한다."
- 피터 드러커, <경영의 실제>
드러커에 따르면 혁신을 판단하는 주체는 고객, 즉 시장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으면 혁신이라 볼 수 없다.
키보드 산업을 보자. 우리는 대부분 쿼티 배열의 키보드를 사용한다. 이미 오래 전, 훨씬 효율적인 드보락 키보드가 개발됐는데도 우리는 드보락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고객들에게 외면 받았기 때문이다. 드러커는 키보드 산업의 사례를 들며 새로운 기술이 늘 시장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2. 시장 창조
혁신이란 제품의 연결, 프로세스의 개선, 가격의 인하와 같은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드러커가 혁신의 사례로 자주 언급하는 시어스 로벅은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이 아니었다. 본래 잡화점이었던 시어스 로벅은 시계를 사러 직접 상점에 가는 농부를 보고 카탈로그에 상품 정보를 실어 농부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머지않아 미국의 물류, 유통 산업을 재편했다.
누군가는 배민이 단지 전단지를 모바일 앱에 넣어놨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혁신에 대한 드러커의 정의에 따르면, 그 단순한 사고방식의 전환이 곧 혁신적 아이디어라 볼 수 있다.
드러커가 마케팅 분야의 혁신 사례로 언급했던 것 중 '할부' 서비스가 있다. 고가의 제품은 본래 돈이 많은 사람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할부 제도가 생기자 고가 상품의 중산층 소비자라는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여기서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고객'이다. 고객은 잔인하리 만치 가치 중심적이다. 소비자는 가치가 있는 곳으로 몰린다.
배민이 만들어낸 편의는 시장을 빠르게 재편했다. 배민이 등장하고 고객은 클릭 한 번으로 음식을 배달 받는 '편의'를 제공받았다. 그러자 '배달 맛집' '리뷰 맛집'과 같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냈다.
3. 혁신과 창조적 파괴
혁신기업이 시장을 재편하게 되면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도태된다. 필름산업을 보자.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도입되면서 필름 시장은 디지털 시장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코닥은 필름 사업만 고집하다 2012년 결국 파산했다. 반면, 후지필름은 기존에 갖고 있던 화학 기술을 응용해 화장품, 헬스케어, 반도체 소재 등 신사업에 진출하며 새로운 시장에 적응해 살아남았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 같은 현상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 불렀다.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경제적 성장의 동력이 되지만 당연히 기존 산업 내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예를 들어 차량 공유 서비스인 타다가 등장하자 기존의 택시업계는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파업을 일으켰다. 마찬가지로 카카오택시가 카풀 서비스를 도입하자 기존 택시 기사들은 이에 반대하며 파업을 일으켰다.
혁신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는 논의가 진행된다면 그건 대부분 공급자적 관점이다. 피터 드러커는 시장의 이 같은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업과 시장구조는 너무나 견고해 보이기 때문에 어떤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운명적으로 그런 산업에 속해있고, 그것은 자연 질서의 한 부분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확신한다. (…) 산업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변화를 보면서도 일차적으로는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고 위협으로 인식한다."
- 피터 드러커, <위대한 혁신>
혁신은 그 자체로는 어떤 윤리적 함의를 갖고 있지 않는다. 배민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대체로 사람들이(특히 내부자들이)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민을 통해 배달 산업이 성장하면서 포장, 배달 전문 식당의 등장, 오토바이 수요의 증가, 배송용기 수요 증가 같은 새로운 시장이 기존 산업을 대체하고 있다. 이건 명백한 창조적 파괴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4. 혁신과 독점적 지위의 해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혁신 기업들이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한국의 혁신기업들을 우려 섞인 눈으로 보고 있을까? 아니면, 이런 현상들이 단순히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 섞인 신음일 뿐인가?
문제의 원인은 바로 '독점'이다. 혁신적 기업은 대부분의 경우 시장을 재창조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독점적 지위를 유지한다. 이러한 지위를 위협하는 것 또한 후발 기업들이다. 이들은 모방이나 새로운 기술 개선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경쟁적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독점이 오래 지속된다면 문제가 커진다.
"외부, 즉 시장에서도 단 하나의 지배적 공급자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한 교묘한 저항이 일어나게 된다.(...) 단 하나의 공급자만 갖고 있는 새로운 시장은 시장 규모가 100이 되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
- 피터 드러커, <변화 리더의 조건>
시장에 경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기업은 목적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윤'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테슬라나 트위터가 근로자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대규모 감축에 들어간 것도 기업이 스스로를 경제적 기관으로만 생각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트위터에서 특정 기자의 계정을 정지시켜 저널리즘의 자유를 침범했다는 논란을 만들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경영자가 가져야 할 윤리적 책무를 져버린 행동이라 평가 받는다.
"경영자는 공익에 부합하게 행동할 책임이 있으며,(...) 자신의 사익 추구와 사적 권한 행사가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언제나 그것의 추구와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
- 피터 드러커, <경영의 실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하면 고객들은 기업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이건 쿠팡이 높은 시장 점유율과 편의를 제공하는 것과 별개로 근로자들의 부당한 처우 등으로 기업 이미지가 좋지 못한 이유와 같다.
여러 스타트업에 영감을 불어넣던 배민은 2위 업체인 요기오를 인수하면서 시장에 독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배민 또한 독점적 지위가 오래 지속되면서 부정적인 이슈들이 수면 위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를 유일하게 견제하고 있는 기업이 다른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노리고 있는 쿠팡이라는 점이다. 쿠팡은 최근 쿠팡이츠를 통해 배달 시장에 독점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배민 또한 생활잡화 등을 지역 배송하는 서비스(B마트)로 진출하면서 독점에 대한 상호 견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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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을 혁신 기업으로 볼 수 있을까?
쿠팡이 혁신 기업인가에 대해서는 배민보다도 논란이 많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첫째, 쿠팡의 로켓배송이 기술적 혁신이라 볼 수 없다는 것과 둘째 쿠팡이 오랜 기간 이익을 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건 다음의 두 가지 논리로 반박 가능하다.
첫째, 혁신을 기술이 아닌 시장 창조로 본다면 쿠팡은 혁신기업이 맞다. 쿠팡은 당일 배송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냈다. 둘째 쿠팡은 이미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2022년 3분기 부터흑자 전환에 성공해, 2023년 현재 까지 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건 한발 앞서 전자상거래 기업의 미래를 제시했던 아마존이 적자를 내던 기간보다 훨씬 빠른 기록이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통해 국내 물류 유통 시장은 물론, 쿠팡 플레이, 쿠팡 이츠 등 새로운 시장 환경을 빠른 속도로 재편하고 있다. 반면에 같은 유통기업인 마켓컬리는 '새벽배송'이라는 시장을 창출해냈지만 이익을 내지 못해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럼 피터 드러커가 살아있었다면 배민과 쿠팡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 50년 전에 이미 전자상거래와 배송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기업에 있어 배송은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 될 것이다. 배송의 속도, 품질, 반응 속도는 브랜드 파워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분야에서 조차 결정적인 경쟁력 요소가 될 것이다."
- 피터 드러커, <Next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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